HOME > 병원소개 > 병원역사   
병원역사            둘러보기            오시는길


■ 태동기 (1950년 후반~1961년)
과거 일제통치시대 나환자는 강제수용되었는데 해방과 6.25사변등 사회 혼란으로 나환자들은 수용소를 뛰쳐나와 거리를 배회하며 유랑구걸하게 되었다. 1950년대 후반 이러한 나환자들의 참상을 알고 계시는 서정길 대주교님께 어느 나환자가 찾아와 구호를 요청하게 되자, 교구성에 근무하고 있는 오지리인 신부(루듸신부)에게 이 일을 맡아 나환자를 도와주라는 것이 동기가 되어 천주교 대구대교구 구라(故)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루디 신부님은 자선사업단체인 오지리가톨릭부인회에 재정지원을 얻게 되어 나환자를 위한 구라사업이 진행되었으며 우선 나환자들이 구걸하지 않고 일정한 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의성 신락원과 고령 은양원 두 곳에 마련하였다. 나환자의 치료를 위해 이들을 간호하며 돌봐줄 사람을 구하던 차 오지리에서 간호원(엠마 프라이싱거) 한 분이 자원하게 되어 이곳으로 오게 하였다.
나환자도 일반 환자와 같이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을 수 있는 현대식 병원을 건립하고자 현소재지에 대지를 마련하여 병원을 세우려하니 주민들이 반대하여 이명우 부주교를 비롯하여 서순봉 교수, 지방관서장 등이 주민들을 설득시켜 합의를 보고 나환자를 수용할 때는 담장을 쌓아 입원환자는 병원 밖으로 못 다니도록 한다는 주인들의 요구조건을 들어 병원을 건립하게 되었다.



■ 초창기 (1962년~1965년)
나환자의 입원치료를 위한 병실이 건립되자 고령 은양원에 있던 엠마 프라이싱거 여사가 이곳 병원으로 숙소를 옮겨 병실을 관리하게 되었다. 당시 우리의 재정사정은 빈약하여 오지리가톨릭부인회의 지원을 받아야만 했었다.
초창기 우리 병원은 병원이라기보다 나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수용시설로 되어 있는 형편이었다.

■ 성장기 (1966년~1970년)
병원 본관건물이 세워지고 엠마 프라이싱거 여사께서 원장직을 맡게 된 후부터는 차츰 병원 형태로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병원건립을 반대하던 주민들도 엠마 원장님께서 무료치료를 실시하게 되자 점차 많은 주민들이 병원을 이용하게 되었다.
한편 일반 외래환자를 진료하며, 이를 중에서 나병을 조기에 발견하게 되어 나병퇴치에 좋은 성과를 얻게 되었다.
또한 엠마원장님께서는 오지리가톨릭부인회와 서독구라협회 등으로부터 필요한 지원을 많이 받을 수 있어 나사업 발전에 큰 공헌을 하게 되었다.

■ 발전기- I (1971년~1996년)
우리나라 경제사정이 나아짐에 따라 외국원조가 차츰 감소되어 이제 우리의 나병관리사업은 우리 힘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우리병원은 일반 외래 피부환자 진료수입과 릴리회 성금 등으로 자체에서 구라사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된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다행히 나병으로 발견되는 환자 발생이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어 오직 나환자들에게 각종 치료의 혜택과 생계대책을 마련하는 동 설립자의 정신에 따라 성실히 나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여 왔다.

■ 발전기- II (1996년~현재)
96년 9월에 30년 동안 가톨릭피부과의원을 이끌어 왔던 엠마 프라이싱거 원장이 정년으로 퇴임하였고, 이후 3대 원장 채영희(요셉)신부 외 대구대교구 소속 사제들이 부임하여 엠마 프라이싱거 전임원장의 업적과 정신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하여 진균의학연수소 및 한센의학연구소와 노후된 입원병동을 신축하는 사업등을 통하여 계획되어진 여러가지 일들을 구체화시키고 실행중에 있다.